달러화 살펴보기
미국 달러 지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준이 수행하는 통화공급과 금리조절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지폐를 보면 연준이 화폐발행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폐에는 '연방준비은행권’이라는 표기가 있고 12개 지역연준 가운데 어느 은행이 발행한 지폐인지 표시하는 소인이 찍혀 있다. 물론 연준은 돈을 찍어내는 권한을 이용해, 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통화공급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연준은 공개시장조작과 유동성 공급장지를 통해 통화공급을 관리한다. 간단히 말하 면 연준은 금리, 경제, 미국 금융체계를 규제하기 위해 언제든 활용할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는 것이다.
연준이 금리조절을 위한 장치를 가동하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유동성을 은행체계에 투입할 때 그 영향은 금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연준의 정책은 자본시장과 은행체계를 거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거나 상쇄된다. 이를 가리켜 전이 효과라고 한다.
전이 효과
연준은 항상 간접적으로 자산가치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연준은 이제 심판과 선수로서 매우 직접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현재 연준은 자산을 시들이고 자산매입을 위한 대출을 제공하면서 가격설정자의 역할도 맡고 있다.
새로운 역할이 생겼지만 연준은 여전히 금리조절을 통해 자산가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연준이 금리를 변경하면 그 효과는 시장에 전이되고 이는 연준의 조치가 의도한 효과를 거두는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이 효과가 클수록 연준의 금리관련 조치의 효과는 더욱 커지고, 경제성장과 목표인플레이션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연준이 할 일은 줄어든다. 반면, 전이 효과가 작거나 연준의 조치가 의도와는 상반된 효과를 일으키는 경우 연준이 애초 목표를 달성하려면 금리조절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시장의 힘이 연준의 조치를 잠식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금융위기동안 벌어졌다. 전이 효과가 사라지자 연준이 해야 할 일은 더욱 늘었 다. 이처럼 전이 효과의 총체적 영향은 특정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준의 금리조절 강도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금융변수의 순효과를 금융여건이라고 한다. 금융변수들이 경제활동을 활발히 촉진할 때 금융여건이 완화됐다고 표현하며 경제활동을 둔화시킬 때는 금융여건이 긴축됐다고 표현한다. 전이 효과가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방식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적절한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연준이 맞닥뜨린 대표적인 난제라고 할 만한 일이 1999 2001년 사이에 벌어졌다. 1999년 6월, 연준은 주식시장의 과도한 투기 열풍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금리 인상에 돌입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수개월 동안 계속됐고, 2000년 초 연준의 조치가 수많은 경로로 전이되기 시작하면서 금융여건은 극적으로 긴축됐다. 실제로 1999~2000년 사이 기술주 거품이 꺼지면서 기술주의 가격이 폭락했다. 이는 부정적인 부의 효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소비가 둔화됐다. 게다가 회사채와 국채의 수익률 스프레드는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은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에 더욱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대출기관들이 대출요건을 강화하면서 신용공급은 더욱 위축됐고 투자자들은 신용도가 최고수준인 회사 외에는 투자를 꺼렸다. 신용공급이 제한되면서 기업들도 투자를 축소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를 불러왔고 결국 미국의 수출감소로 이어졌다.
실제 사례
이런 사례는 연준이 금리를 변경할 때 그 효과가 수많은 경로를 거치며 얼마나 크게 확대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연준이 금리를 조절하고 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금리조절이 미칠 영향까지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도 시사한다. 적절한 금리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은 목줄을 길게 잡고 개를 산책 시기는 일에 비유되기도 한다. 연준이 금융체계에 막대한 유동성을 쏟아 부은 결과 목줄은 더욱 길어졌다. 목줄이 길어진 탓에, 연준으로서는 어느 시점에 줄을 당겨야 하는지를 알기가 어려워졌다. 연준은 환자가 치료제에 어느 정도로 반응을 나타낼 지도 모른 채 상처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해야 하는 막막하고 골치 아픈 임무를 수행한다. 사람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경제문제에 필요한 치료제도 수없이 많고, 약효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합병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미리 알 수는 없는 일이다.
2000년 연준은 경제가 성정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조처를 했지만, 그때까지와는 매우 다른 상황이 이어졌다. 연준의 완화조지에도 금융여건은 더욱 긴축된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전이 효과가 나타나면서, 경제의 병증을 치료하려면 훨씬 강력한 수준의 금리조절이 필요해졌다.
연준이 이례적인 조치를 시작한 것은 2001년 1월3일이었다. 연준은 이날을 시작으로 1년 동안 열한 차례나 되는 전례 없는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러한 공격적 조치는 통상 긍정적인 전이 효과로 이어졌지만, 당시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다. 예를 들어,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2001년에는 주가가 1년 내내 하락했고, 9.11테러의 여파에 따라 주가하락은 단기적으로 더욱 가속화됐다. 주가 약세는 소비자의 신뢰와 소비지출을 약화시기는 원인이 됐다. 게다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와 국채의 수익률 스프레드는 연중 대부분 크게 벌어져, 그 해 최초의 금리 인하 이후 정확히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됐다. 크레딧 스프레드도 확대되어 상황이 좋지 않은 차주들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차입비용이 비싸졌고, 따라서 총 차입과 지출도 감소했다. 모든 상황이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는 정반대였다.
달러화의 교환가치도 통상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때 관찰되던 것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달러가치가 상승하면서 수출이 타격을 입었고 이는 연준의 경기부양 노력과 그 효과를 잠식했다.
대출요건도 연중 대부분 강화된 상대로 유지되다가 연말쯤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상업 및 산업 대출도 급격히 위축됐고 2003년이 돼서야 비로소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연준의 금리 인하가 이례적인 반용을 불러온 결과 금리 인하 조치 이후 금융여건이 더욱 위축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적 전이 효과가 사라지자 더욱 급격하고 연쇄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했고 급기야 2003년 6월 연방기금금리는 40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다.
1999년과 2001년 있었던 연준의 금리조절 이후 금융상황은 현격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 사실은 앞서 언급한 핵심 전이요소들의 영향을 가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보여준다. 금리조절만으로 원하는 경제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원하는 경제적 성과를 이끌어 내는 데 필요한 금리조절의 강도는 경기순환주기마다 크게 달라질 수 있고 금리조절이 시작된 이후 금융상황의 순 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요인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정해진 틀을 뛰어넘어 생각해야 하고, 금리조절 자체의 직접적 영향에 매달리기 보다는 금리조절이 경제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과 금융여건의 순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특정한 경제성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금리조절의 강도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금리조절이 필요한지 알면 금리수준 및 경제에 미지는 금리의 영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데 유리하다. 순 전이 효과를 분석한 결과 시장의 기대가 비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서면 이는 시장의 기대와 역행하는 투자를 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분석결과가 시장의 기대와 일치한다면 그때는 더욱 강력한 확신을 바탕으로 시장의 추세와 함께 하면 된다.
주택, 자동차, 자본지출
전이 효과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연준의 금리변경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전이 효과의 유효성을 파악하기 위해 주택, 자동차, 자본지출 세 부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세 부문은 연준이 금리 인상 혹은 금리 인하에 착수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위 부문이 금리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징후가 나타나면 적절한 시기에 추가적인 영향이 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판매가 증가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동차판매가 늘면 자동차제조업체는 생산계획을 조정해 작업시간을 연장하고 고용을 확대한다. 그 결과 근로자에게는 추가수입이 발생하고 이렇게 늘어난 수입은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사는 데 사용되어 다른 업종 근로자의 수입도 증가하게 된다. 연준의 금리조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 자동차판매 증가는 이처럼 커다란 승수효과, 혹은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자동차산업의 동향을 추적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제조업관련 통계가 미국 경제지표 발표일정의 대부분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 경제전망에 대한 채권시장의 인식이 제조업부문의 상황에서 크게 영향을 받고, 따라서 금리 방향, 스프레드, 수익률 곡선 등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택부문 역시 매우 커다란 승수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최근 들어 그 효과가 더욱 분명해졌다. 예를 들어, 전미주택건설업협회의 자료로는 신규주택착공이 10만 호 증가할 때 건설업 정규직 일 자리 25만 개가 창출되는 효과가 있다. 주택건설 활동동향은 매우 중요하다. 주택부문은 건설업 고용만 아니라 집 안에 갖추는 다양한 물품의 판매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새로 주택을 사는 사람은 가전제품을 비롯해 많은 제품을 새로 사고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고지기도 한다. 경제의 다른 어떤 부문보다 주택부문에서 발생하는 승수효과가 큰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대부분 사람에게 일생의 가장 큰 소비항목이 주택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전이 효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자본지출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자본지출은 노동력보다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특성이 있다. 따라서 기업의 자본지출 계획과 관련된 결정은 이자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공장신축이나 설비구매 계획은 금리수준에 따라 실행가능성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둘째, 금리수준은 경제전망과 기업의 경기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연준의 금리 인상 결과 경제전망이 나빠졌다고 판단하면 기업이 자본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적어진다. 예를 들어, 수요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기업이 재화와 서비스 생산능력을 확대할 이유가 있을까?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고 자본투자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생산능력을 확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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