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에 맞서지 말고 순응하라
앞서 언급했듯이 '연준에 맞서지 마라,'라는 격언은 월가에서 통용되는 오랜 교훈이다 역사적으로 주식과 채권 시장의 성과가 연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은 시기는 많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투자자가 수익을 내기도 하고 손실을 보기도 했다 결과는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연준의 영향력을 얼마나 존중 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오랫동안 시장에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준의 힘에 투자자들이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과도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에 사로잡힌 나머지 감정을 배제하고 현상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 가도 어느 시점이 되면 이성을 되찾고 연준의 조치가 결국 의도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찌감치 연준의 조치에 신뢰를 보낸 투자자일수록 연준에 맞선 투자자보다 더욱 좋은 성과를 거둘 기능성이 크다.
연준이 시장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력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와 제롬 파월 전 • 현직 연준 의장의 정책연설에 대한 채권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연준 의장은 1년에 두 차례 '통화정책 의회보고’ 라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며 통화정책에 관한 증언을 한다.
연준은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상원과 하원에서 통화정책과 경제에 관한 견해를 밝힌다. 의장의 증언은 하원 금융위원회와 상원 은행주택도시 위원회에 출석해 이루어지며 그 시기는 대개 2월과 7월이다. 이 증언이 흥미로운 이유는 연준 의장이 증언을 통해 연준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가운데 민감한주제를 거론하게 되고, 이것이 재권시장에 급격한 반용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표
연준 의장의 증언 당일, 거래가 가장 활발한 국채선물가격의 변화폭은 일일평균변동폭의 두 배에 해당하는 상당히 큰 수준의 변동이었다. 연방기금금리를 반영하는 유로달러 선물계약의 가격 역시 일일평균 변동폭에 비하면 비교적 큰 폭으로 움직였다.
시장의 급격한 반응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투자자가 기억해야 하는 좀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반응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연준 의장의 의회증언 이후 일주일 동안 누적가격 변동폭은 최초 변동폭의 두 배에 달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도 초기와 동일한 방향으로 반응이 지속되면서 연준의 정책적 입장은 자리를 잡게 됐고 시장참여자들은 이를 반영해 계속해서 포지션을 조정했다. 앞으로 연준 의장의 연설이 발표될 때는 이 사실을 기억하자. (일부 발췌한 내용만 알아서는 안 되고 연설문 전체를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장의 반기증언 이후 시장이 급격히 상승하거나 하락했다면 그 반응과 동일한 방향으로 거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그 상태로 시장에 어떤 마무리 반응이 나타날지 기다리는 것이다. 최소 일주일간 이런 태도를 유지한 다음 상황을 재평가해야 한다. 연준 의장의 정책발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적어도 2~3주가 지속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표면성으로 시장은 연준 의장의 반기 의회 보고에 매우 급격히 반응한다. 의장의 발표가 연준의 정책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준의 정책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기 때문에 의회보고 이후 몇 주간 시장에 동일한 반응이 지속될 이유는 충분하다. 실제로 연준의 통화정책은 대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유지된다. 여기서 알아둘 것은 통화정책에 관한 연준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와 일치하는 투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준 의장의 정책연설이 있을 때 그 연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지속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따라 거래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단기 및 장기 트레이딩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장기 투자자라면 포트폴리오 포지션에 진입하거나 포지션을 청산할 시점을 결정하는 데 이 원칙을 활용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방향성 투지를 할 때나 다양한 채권유형의 상대적 성과에 베팅할 때 이 원칙을 활용해야 한다. 다른 금융자산 대비 채권의 투자수익률을 예측할 때도 이 원칙을 활용한다.
엄격한 규율주의자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듯 엄격한 규율주의자가 되어 미국 경제를 통제하는 것이 연준 의장의 의무다. 파티가 엉망이 되기 전에 술잔을 정리하는 것도 연준 의장의 의무다. 2000년대 초반 연준이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금리정책이 정말로 금융위기의 씨앗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은 아직 유보상태다. 금융위기의 근원은 상당 부분 소비지상주의가 최고조에 이르고 정책입안자들이 적극적으로 집을 사라고 부추겼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 조치를 도입하기로 하고 1994년 여섯 차례, 그리고 1995년 추가로 세 차례 더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했다. 연이은 금리 인상은 많은 투자자를 당황하게 했고 경제를 조기에 성장궤도에서 이탈시키려는 의도로 비칠 지경이었다. 연준의 긴축정책은 주식시장을 가라앉히고 채권시장에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다. 실제로 1994년은 채권시장에 있어 수십 년 이래 최악의 해였다. 30년 만기 수익률은 1993년 10월 15일 5.78%에서 1994년 11월 7일 8.16%로 상승했다. 채권시장의 약세는 주식시장으로 이어져 s&P500 지수는 1994년 1.5% 하락했다.
연준의 애초 의도는 좋았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을 저해할만큼 가속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94년에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1990년대 후반, '새로운 시대, 골디락스 경제' 등의 어구에 내포된 뜻을 신뢰하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었다.
1994년 투자자들은 경제성장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신봉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전인 1990년에도 소비지물가지수는 전년대비 6.8% 상승했다. 몇 년간 부진했던 성장세를 뒤로하고 1993년 말에서 1994년 초반 사이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자 기대인플레이션이 즉각 상승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따라서 1994년 당시 인준의 앞에 놓인 과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주는 일이었다. 결국, 경제적 배경을 볼 때 당시 존재했던 인플레이션 의혹은 대부분 심리적이었다. 당시 실업률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예금기관과 대출기관은 수년 전에 시작된 위기로부터 아직도 회복되는 중이었다. 계속되는 대량해고로 고용불안은 고조됐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쇄하려고 신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재정 적자는 축소되고 있었다. 세계경제는 둔화됐고 그 선두에 일본이 있었다. 지나고 나서 이야기지만, 이러한 모든 요인에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컸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싸움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연준이 싸울 상대는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공포였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언젠가 “전반적인 물가수준의 예상 변동폭이 개인과 기업의 의사 결정에 더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만 물가안정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연준 관계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표했다. 1994년,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의 위협은 개인과 투자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연준은 대중에게 인플레이션 위협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플레이션은 과거의 일일뿐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지 확실히 알 수 없었던 연준은 금리를 서서히 올리는 방식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기기 위한 전투를 시작했다. 1994년 2월을 시작으로 연방기금금리를 25bp씩 세 차례 인상한 것이다. 그러나 상품가격과 장기 금리가 모두 상승하며 인플레이션 공포의 정도가 드러났고,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재현될 것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을 안 심시킬 필요를 느꼈다. 이에 연준은 1994년 5월과 8월, 각각 50bp씩 좀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1994년 11월, 이런 새로운 전략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를 완화시키는 데 실패하자 인준은 75bp라는 대폭의 금리 인상을 했고, 연방기금금리를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 조치로 시장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시장금리는 급등 했으리라 예상했겠 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채권수익률은 같은 달 고점을 찍고 꾸준히 하락했다. 3개월이 지난 1995년 2월 연준이 한 차례 금리 인상(50bp)이 추가로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락세는 다음해까지 지속되었다.
마침내 연준은 투자자들의 인플레이션 공포를 불식시켰고 그 원인이었던 경제 불균형도 극복해냈다. 노력의 대가는 빠르게 나타났다. 1995년 장기 국공채시장은 3%를 넘는 상승세를 보였고 s&P500 지수도 34.1%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은 2.6%에 그쳤고 이후 10년 동안 인플레이션 공포는 재현되지 않았다. 이후 수년 동안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번영을 이루며 수백만 미국인들에게 혜택을 안겼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 관리 수단 (0) | 2023.01.15 |
---|---|
연준 관측기술 (0) | 2023.01.15 |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영향_02 (0) | 2023.01.10 |
연방준비제도의 강력한 영향 (0) | 2023.01.10 |
달러, 전이 효과 (0) | 2023.01.09 |
댓글